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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마음아픈 어린 왕. 단종의 무덤. 강원도 영월 가볼만한곳. 장릉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

 입장료 : 어린이 1,000원, 청소년 1,500원, 성인 2,000원

 다른곳의 왕릉과 비교해서 초라함에 놀라는 왕궁으로 돌아가고팠던 어린왕의 안식처.



영월장릉

코로나 19로 인해서 새로생긴 신조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마무리되고 생활속 거리두기가 한창인 요즘. 

보호자와 주말오후 답답한 집안에서 오전엔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 가까운 곳으로 나서봤습니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영흥리 1090-1)

바로 강원도 영월군의 영월10경 중 1경인 단종의 무덤인 영월장릉. 

예전 아이들이 어릴때 와본기억이 있긴하지만,

이젠 학업을 위해 객지로 나가있는 아이들없이 보호자와 단 둘이 손을 잡고 입장을 합니다. 


영월장릉2

 영월 장릉의 관광안내소의 전경입니다. 오후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입장이 가능한 시간은 18시까지였으며, 

약 1시간30분정도의 여유가 있어서 안내해주시는 분이 그정도 시간이면 관람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하셔서 믿고 따릅니다. ㅎ


영월장릉1

입구에서 2천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보호자와 함께 장릉으로 들어섭니다. 

입구 오른쪽에 설치된 세계문화유산등재를 기념하여 세운 표지석. 

2009년 6월에 총40기의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왕조가 500년이상 지속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드물고, 

왕과 왕비의 무덤이 모두 남아있는 사례가 흔지않았던 점이 등재이유라고 했었지만 이곳 장릉은 단종의 무덤 하나뿐입니다.  


영월장릉3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정면에 보이는 단종역사관.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서 역사관은 문이 닫겨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내해주신분의 말씀대로 동선을 정하고, 먼저 오른쪽으로 난 데크로드를 따라서 약간의 산길을 올라갑니다. 


영월장릉4

데크로드가 시작하는 바로 옆. 박충원 낙촌비각이라는 비각이 있습니다. 

옆에 있는 설명문에 따르면 중종26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후 문정공이란 시호를 받은 박충원의 충신됨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1973년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영월장릉5

가파르지 않은 그냥 산책하기에 딱 좋은 길. 

방문객들의 발걸음으로 깊게 파였을 등산로는 이제 시멘트포장을 해서 양쪽의 소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내는 일은 없어보입니다. 

나무를 보호하기위해서 시멘트포장을 하고, 또는 데크로드를 놓아야 하고, 

정말 지구라는 생명체입장에서 본다면 유일한 해충은 인간일듯 합니다. 


영월장릉7

그리고 바로 앞. 이곳 장릉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못해서 아주 단촐한 모습입니다. 

여지껏 많이 보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던 다른곳의 왕릉과는 규모면에서 너무나 소박한 모습인듯 합니다. 

이곳이 '홍위'라는 본명을 가진 단종의 무덤. 

문종의 아들로 세종23년(1441년)에7월 23일 태어나서 12세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후, 

숙부인 수양대군의 계유정란과 그 위협으로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후,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그후 제가 사는 영주시의 순흥면에 유배된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사건으로 1457년 10월 24일 단종에게 사약을 내려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졌던 단종의 시신을 모신 곳입니다. 

엄흥도라는 분이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한 것을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수없다가 

1541년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라는 분이 묘를 찾아내어 정비했고, 1580년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등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후 1681년 단종은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11월에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를 장릉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영월장릉6

뒤를 돌아보면 아직은 파릇파릇한 잔디와 전경의 야트막한 산이 500여년전의 아픈 역사는 아랑곳하지않고 이쁘게만 보입니다. 

장릉을 관람하고 난 후 이제 저기 아랫쪽으로 내려가봅니다. 


영월장릉11

장릉에서 내려오면 이렇게 홍살문이 있습니다. 홍살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신도라고 해서 신들만 다니는 길이요, 

오른쪽으로 난 잔디위의 길은 왕로라고 해서 초헌관이나 일반제관들이 다니는 길이라고 하며, 

왕로를 이용해서 관람을 하라고 합니다. 


영월장릉10

바로 앞의 장판옥이라는 건물로 정조15년(1791년)에 건립된 것으로 

단종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자군노 44인, 여인위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신 곳입니다. 


영월장릉12

장판옥을 거쳐서 수복실입니다.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곳으로 

숙종 25년 바로 옆의 정자각과 함께 세운 것입니다. 


영월장릉13

단종비각입니다. 영조9년(1733년)에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되었으며, 

비석의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이라는 글이 붉은색으로 음각되었으며, 뒷면에는 그의 생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영월장릉14

그리고 독특한 정(丁)자 모양의 정자각입니다. 

숙종25년(1699년)에 건립된 단종대왕 제향시 제물을 올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영월장릉15

그리고 정자각을 지나서 수라간. 오늘날의 주방을 뜻하지요. 

이곳도 안을 들여다볼수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작은 규모입니다. 


영월장릉16

그리고 수라간을 돌아서 영천을 관람합니다. 우물의 깊이는 1.5m정도이며, 

평소에는 조금의 물이 솟아나지만 매년 한식때 제향을 지낼때에는 물이 많이 용출되어 제정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영월장릉17

그리고 뒷쪽으로 난 작은 솔숲사이를 피톤치드와 상쾌한 공기를 흠뻑 마시고 손을 잡고 걸어봅니다. 

예전에 이곳에서 차로 5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청룡포에도 가본적있었는데 그곳의 소나무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솔숲은 항상 기분좋아지는 곳입니다. 

 

영월장릉19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길에 만났던 작은 연못과 그 뒤로 보이는 장릉의 건물들.

참고로 조선시대의 왕릉중에서 장릉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은 3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 영월의 장릉(莊陵),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묘인 파주의 장릉(長陵),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묘인 김포의 장릉(章陵). 


영월장릉20

장릉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의 좌측으로있던 엄흥도 정여각.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몰래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그의 충절을 알리기위해 영조2년(1726)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영월장릉21

그리고 그 옆으로 재실.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과 수호군 9인이 거주하는 곳이며, 

단종제향을 지낼때 제물과 제기 등 각종 기구를 보관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영월장릉22

제가 방문했을때엔 이렇게 각종 능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답니다. 

이렇게 잠시 장릉을 관람하고 보호자와 전 이제 맛집을 검색해봅니다. 슬슬 서산으로 해가 넘어갈 시간도 다 되어가는듯~~


언제나 그렇듯이 이 포스팅은 아무런 댓가를 제공받지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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